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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회고

23년 회고: 학생과 직장인의 이중 신분

by 뭉망뭉 2023. 12. 31.

벌써 23년의 12번째 태엽이 다 돌아가는 시기가 도래했다. 23년은 학생과 직장인의 신분이 공존하는 해였다.

내게 큰 전환점이 된 22년 10월 입사를 기준으로 기재하고자 한다. 핵심 콘텐츠는 다음과 같다.

 

  • 갑자기 정규직 취직
  • 온보딩 시작
  • 개발 행사 좋아
  • 스터디의 굴레
  • 취업계 없는 학교의 학생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고군분투
  • 미국에 공부하러 가요
  • 운동 짱이 될 거야
  • 유럽 퇴사 여행

 

어느 정도 시간 순서에 따르나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되며 주제별로 군집되어 있다.

시작하기 전에 자랑하고 싶으니까 올해 쓴 업무 일지부터 보고 가자.

스프린트 이름은 혹시 모르니 가렸다. 일하면서 오늘 뭐했는지, 배운 점이 무엇인지, 코드리뷰 받은 내용 중에서 기억해둘 점이 무엇인지, 스프린트 후 회고 등을 적어두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적기 잘했다 싶다. 지금 저 내용을 보면 내가 저걸 몰랐다고? 싶은 내용들이 많은데 그만큼 일하면서 배운 내용들이 많다고 느꼈다.

 

 

갑자기 정규직 취직

22년 2학기는 휴학의 분기였다. 원래 계획은 휴학 없는 칼졸업이었는데 전공이 3개이다 보니 전공필수끼리 겹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매학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물론 매학기 추가 학점을 받아 7전공을 수강하는 건 항상 동일했다. 내 계획에 따라주지 않는 강의 시간표에 따라 해당 전공 필수를 수강하기 위해서는 엇학기를 맞추기 위해 휴학을 해야만 했다. 휴학하지 않고 어떻게든 둘 다 4-1학기에 수강하고자 본전공 교수님과 복수전공 교수님과 본전공 학과 사무실과 복수전공 학과 사무실과 본전공 학과장 교수님과 복수전공 학과장 교수님들께… 이리저리 권한 인계에 따라 메일과 전화를 돌리고 부탁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으나 7학기생의 간절한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8학기가 되었을 22-2학기 페이지에는 쉼표가 찍혔다. 이렇게 된 거 쉬어보자고 생각하고 휴식을 취했으나 23년 인생에서 기약 없는 휴식을 해본 적 없던 나는 사실 노는 법은 알았는데 쉬는 법을 몰랐다. 초등학생 때도 시험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 때는 그냥 열심히 살았다. 매학기 기본 21학점 7전공 수강에 동아리를 보통 학기에 최소 2개 최대 5개를 병행했고 해커톤이나 공모전도 종종 참여했고 스터디도 계속 했고 학점도 열심히 챙겼다. 근데 그만큼 노는 것도 좋아해서 내 취미 생활인 방탈출도 많이 했고 (지금은 해본 방탈출이 도합 170개가 넘었다.) 동아리 뒤풀이도 꼬박꼬박 참여했고 이곳저곳 놀러다녔다. 방학 중에는 계절학기를 1개씩은 수강했고 조금 한가해진다 싶으면 동아리를 늘렸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하루를 쪼개 사는 것에 보람을 느꼈는데 갑자기 큰 비중을 차지하던 학교가 사라지니까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비었다. ‘시험 끝나고 잠깐 놀기’가 아니라 ‘그냥 놀기’가 되어버린 생활은 편안함이 아닌 불안함을 주었다. 물론 기존에 하던 CS 스터디라든지 사이드 프로젝트 등은 계속 했지만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이라 기약 없이 쉰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대로 더는 못 쉬겠다 싶을 때 인턴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이 회사에 지원하고 여러 절차를 거쳐 첫 면접을 보았고, 합격 고지를 받았다. 인성 면접과 기술 면접이 1차 2차로 나뉘어 있길래 2차인 기술 면접을 다른 날에 보는 줄 알고 면접 전에 인성 면접만 준비했더니 기술 질문과 인성 질문을 하루에 다 보았었다. 인성 면접 끝나서 가는 줄 알았는데 개발자 면접관 분들이 들어오셨을 순간의 놀라운 기억이 뚜렷하다. 2차로 당황한 일은 오퍼 레터가 정규직으로 온 것이었다. 나는 인턴으로 지원했는데… 정규직?

 

당시 나는 정규직을 할 생각이 없었고 인턴으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근무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메일을 주고받던 중 남은 학업은 회사와 병행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고, 연봉 협상도 체결되어 10월 26일에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사 전 해외여행을 다녀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당시의 나는 여행에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않았고 그 돈과 그 시간으로 방탈출 왕창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하루에 2~3연방씩 했다.

 

 

온보딩 시작

두근두근 첫 업무로 온보딩 태스크가 주어졌다. 주어진 태스크를 기한 없이 수행하는 것이었고, 첫 PR에 코드 리뷰가 달리던 순간, 첫 배포를 하던 때의 떨리던 순간이 기억난다. 이 태스크 끝내고 썼던 회고를 지금 보니까 굉장히 귀엽다.

지금은 QA 중에 버그 나와도 떨리지 않는데 저때는 당황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실서버 간 것도 아니고 버그야… 고치면 되지..~~

한 달 걸려도 괜찮다고 하는 걸 워킹데이 4일만에 끝내버렸고 이후 백로그를 뒤적거리면서 이거 해도 되냐고 여쭤보고 하루씩 해치우는 일을 자행했다. 왜 입사 초반의 여유를 즐기지 못했을까 ^-^… 왜…왜 그랬을까… 다시 돌아가도 그럴 것 같긴 하다.

 

 

개발 행사 좋아

개발 행사는 관성대로 관심 있는 것이면 다 참여했다. DDC도 가고 Google I/O Extended Incheon도 가고 테오콘도 가고!

 

인프런 미드나잇 프론트엔드 행사에서 만나 친해져 사이드 프로젝트도 같이 한 사람이 있는데, 놀기로 약속을 잡았다가 같은 날 열리는 개발 행사를 발견했고… 관심 있냐고 물어봤다가 술약속은 그렇게 개발 행사 같이 가기로 변경되었다. 세션을 듣다가 프레임워크 없는 프론트엔드 책 스터디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갑자기 스터디가 결성됐다. 스터디 하기로 얘기한 사람이 GDSC 숭실 소속 2명과 GDSC 숙명 알럼나이(나) 이렇게라 GDSC 숭실 스터디로 편입시켜 다른 GDSC 사람들도 모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따지자면 외부인 신분이긴 한데 GDSC 알럼나이도 GDSC니까 ^-^

 

네이버 DEVIEW가 열리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 동료들한테 같이 가자고 말해서 회사에서 다같이 티케팅했는데 나 포함 3명이 성공했다! 회사에 업무 시간으로 인정 받아서 연차 없이 가게 되었다. 개발 방향을 잘 가고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가 회장 연임하던 사회과학 독서토론 동아리가 있었는데 기자가 되어 취재하러 온 동아리원을 마주쳤는데 각자 자리에서 사회에서 만나게 된다는 게 되게 신기했다.

 

테오콘 당첨돼서 갔다왔는데 명함 굿즈가 명함 교환할 때 좋았다. 각자 큐알 하나씩 넣을 수 있는데 나는 노션 따로 만들어서 넣었다. 네트워킹이 주된 목적인 콘퍼런스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다! 프론트 개발자만 왕창 모여있는 곳 찾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내용도 꽤나 유익했다.

 

테오콘에서 같은 테이블에 대학생인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다들 직장인일 때 나만 대학생이라 다들 회사 얘기할 때 말할 얘기가 없다는 그 격차와 그 기분을 인프런 심야FE 행사에서 느꼈어서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걸었었다. 그때는 직장 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이직을 위해 공부하신다고 하셔서 취업이 끝이 아니구나를 느꼈었다. 당시에 사이드플젝 환경 세팅할 때라 개발 관련 이것저것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입사하고 한두달 후쯤에 해커톤도 참여했다! 회사 사람들한테 해커톤 간다니까 퇴근하고 또 개발하러 가냐고 했었다. 소주톤이 해커톤치고 시간이 굉장히 짧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연차가 제일 낮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리딩하고 있었다. 해커톤도 재밌었는데 이후 네트워킹 세션이 더 재밌었다. 소주톤에서 네트워킹할 때의 나랑 테오콘에서 네트워킹할 때의 나를 비교해보면 회사 조금 다녔다고 확실히 성장하긴 한 것 같다.

 

스터디의 굴레

새벽에 회사 사람들이랑 모여서 노트북하면서 야식 먹고 있다가 갑자기 스터디가 결성됐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두 사람은 일하고 나는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리즘 스터디를 제안했고 다들 동의해서 내가 스터디장으로 알고리즘 스터디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문제 5개정도씩 풀고 못 푼 문제 하나당 커피 한 잔이 적립되는 규칙인데 커피는 고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메가커피 아아가 될 수도 있고 스벅 리저브 커피가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커피였다.

문제 하나에 커피 하나가 걸려있으니 퇴근하고 운동 갔다오면 밤 11시쯤 끝나는데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알고리즘 문제 풀러 다시 회사 돌아가서 문제 풀고 집에 새벽 3~5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꽤나 달달하게 쌓였던 커피 금고가 점점 바닥을 보일 때 회사의 모든 개발자에게 알고리즘 스터디 제의를 했고 (사실 꾸준히 말했다) 이 스터디의 성장(커피)을 기반으로 한 상호확증파괴적인 광경을 봐온 사람들은 거절했다. 얼마나 유익한데…

 

 

얼마나 상호확증파괴적이냐면 회사 여름 휴가 때 혼자 부산 여행을 갔는데 물론 이슈 터지면 바로 대응하려고 해운대에 노트북 들고 다녔긴 한데 스터디 안 미뤄줘서 커피 내기 싫어서 바다뷰 예쁜 카페를 가놓고 알고리즘 문제를 풀었다. 이게 말이 되는?

 

문제 난이도도 쉬운 거 올려놓으면 계속 더 올려달라고 하기 때문에 적당히 어려운 거로 했고 골드5였나 실버1이었나 하던 내 레이팅이 골드1이 됐다. 알고리즘 문제 풀기 싫어서 알고리즘보다 더 재밌는 회사 일을 하던 나… 알고리즘 문제 풀기 싫어하던 사람이 골드1이 되기까지..~

 

 

 

다른 스터디는 프레임워크 없는 프론트엔드 스터디이다. 위에서 기술했듯이 개발 행사에서 결성된 스터디인데 학생 사이에 직장인인 내가 껴있어서 시간은 퇴근 후 시간대가 되었다. ‘프레임워크 없는 프론트엔드’ 책을 스터디 날짜까지 읽어오고 각자 생각을 공유하는 스터디였다. 동시에 진행된 스터디가 ‘프레임워크 있는 프론트엔드’ 스터디인데 각 프레임워크를 담당자가 맡아서 프레임워크에 대한 설명과 투두앱 코드잼을 진행하는 스터디이다. 나는 스벨트를 맡았고 스벨트 코드잼을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프레임워크로 투두앱을 만드는 경험을 했다. 보통 투두앱 하면 강의 보고 따라치는 게 국룰인데 참고 코드는 공식문서밖에 없고 직접 만드니까 투두도 재밌었다. 영수증 콘셉트로 만들고 싶어서 입력한 글자에 따라 바코드 모양이 바뀌는 api도 찾아서 쓰게 됐다. CHEER UP이었던 글자 및 바코드가 일을 다 완료하면 GOOD JOB으로 바뀌는 아주 귀여운 투두

해당 코드가 담긴 깃허브는 여기에 있다. 

 

스벨트를 처음 알게 된 건 npm trends에서 갑자기 두각을 드러냈던 크리스마스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런 재밌어 보이는 신기술. 절대 참을 수 없어. 기회가 생긴 김에 여러 프레임워크 중 스벨트를 선점했다. 스벨트 후기는 문법도 간단하고 state 관리를 위해 작성해야 하는 코드량이 적기도 해서 리액트 배우기 전에 익히면 리액트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은 프레임워크였다. 아직 안정성이나 커뮤니티가 덜 해서 실무에서 적극 활용하기에는 무리겠지만 개발자의 생산성 자체는 향상되겠다 싶었다. 빌그타임에 js 코드로 바뀌어서 속도 면에서도 좋을 것 같고? 그게 실서비스에 개발자가 스벨트를 배우는 것에 쓰는 비용 대비 유의미한 속도 차이를 가져올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 스터디가 끝날 때쯤 CRA 없는 리액트 스터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패키지 매니저와 번들러에 대해 각자 맡은 부분을 조사해와서 발표하는 건데 내가 조사한 부분 말고는 설명만 들은 거라서 다시 제대로 공부해 봐야겠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리팩토링하다가 너무 바꿀 게 많아서 버전 2를 새로 팠는데 npm에서 yarn으로 바꾼 게 이 스터디 하고 나서였다.

 

 

그리고 이것은 사이드플젝 모각코 광경

 

회사도 다니고 스터디도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사이드플젝을 틈틈이 하기 어려워 매주 만나 모각코를 했다. 만났을 때 바빠서 많이 못 해왔으면 죄책감이 쌓이니까 아예 만나는 시간에 코딩을 하자!가 주 모토였다.

 

일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다보니 학생 때와 다르게 실무를 하며 성장을 많이 했고, 기존 코드를 못 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생 당시에는 enum의 필요성을 몰라서 타입을 enum이 아니라 string으로 받고 있었다든지 하는 자잘한 문제들이 쌓이다보니 프로젝트 완성 후 리팩토링을 하게 되었다. 백엔드 1명 프론트 1명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백엔드 팀원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고 백엔드도 리팩토링하다보니 api가 많이 바뀌었다. 바뀐 api에 기존 구조를 바꾸어 대응하자니 변경사항이 너무 많아져서 버전 2를 파게 되었다. 버전 2로 마이그레이션하면서 리액트 쿼리로 백엔드 상태 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리액트 쿼리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하다 보니 회사에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아 회사 슬랙에 apollo vs react query vs swr 비교한 글도 올리고 리액트 쿼리 얘기도 했다. api 받는 방식도 바꾸니까 이 디자인으로는 도저히 세상에 못 내보내겠다 싶어 디자인도 다시 시작했다. 개발자가 하는 디자인이라 디자이너가 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버전1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정보 간 강약 조절이라든지 아이콘끼리의 두께 맞추기라든지 조금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은 있겠지만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같을 때 장점은 개발 중에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점이기에 자잘한 부분은 나중에 다듬기로 했다. 이렇게 디자인을 다시 하다보니 나는 분명 사이드프로젝트에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데 커밋 기록은 안 쌓이는 슬픈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디자인은 아직도 ing이다. 일하면서 디자인 UX 피드백 자주 했어서 보는 눈은 있는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까 역시 보는 것과 다르다. 분명 더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거 말고 다른 사이드플젝도 한 적이 있었는데 팀원의 취준 이슈로 중단되었다. 3~4개월정도동안 매주 만나서 했다. 위키도 작성하면서 했는데 정작 리드미를 안 썼네…

 

그리고 인프런 심야 FE 행사에서 만났던 분들이랑 나 포함 3명이서 작게 해커톤 느낌으로 플젝을 했는데 다른 분의 잦은 야근 이슈로 (이하생략) 역시 직장인이 사이드플젝을 병행하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당장 나조차도 주60시간 근무 하던 때 1일1배포하느라 다른 걸 할 엄두를 못 내고 모든 약속 취소하고 일만 했어서…

 

 

 

취업계 없는 학교의 학생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고군분투

학교에 취업계 제도가 조기취업자를 위한 출석인정제도라서 출석 인정만 해주고 과제랑 시험 공부는 수업 못 들은 학생의 몫이었다. 취업했다고 성적을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이 시작됐다. 사실 학교 다니던 때보다는 덜 바빴던 것 같다. 21학점 7전공 3동아리 2플젝 4스터디 vs 1회사 9학점 3전공 1플젝 3스터디? 후자 압승

 

그렇지만 직장인은 항상 야근의 늪에 시달리기 때문에… 회사도 하필 대형 스프린트를 진행하던 때라 일도 바빴다. 회사에서 일 끝나면 보통 10시 이후에 수업을 안 들어서 뭔지 모르는 내용을 공부하고 교수님 설명을 못 들어서 뭐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과제를 회사에서 하고 회사 회의실에서 새벽에 비대면 팀플을 하고… 그냥 회사에서 살았다. 시험 기간에는 일 끝내고 시험 공부로 밤 새우다가 헬스장 가서 씻고 챙겨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 자리에서 출근했다. 회사 다니기 전에는 매일 과방에서 밤을 새웠기 때문에 과방이 회사로 바뀐 거 말고 달라진 게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시험 보러 학교 갈 땐 소중한 연차 2개를 쓰고 일때문에 밀린 시험 공부를 위해 중간기말마다 무박3일을 했다. 그냥 해커톤

 

컴공 전공은 이미 본전공생보다 6학점 초과해서 들었기 때문에 막학기에는 전필이랑 연계 전공 과목만 챙겼다. 시험에 작고 소중한 연차 4개를 태우고 막학기 학점으로 4.4를 얻었다. 한 과목 교수님이 취업계 학생을 잊으셨는지 내 출석 점수가 0점이 나왔지만 A+이라 조용히 있었다. 국문과 막학기에게 문법론 정도는…

 

사진에서 입고 있는 옷은 인프런 심야 FE 행사에서 받은 티셔츠다. 굉장히 개발자스러운 옷이라서 시험 기간에만 입었다. 고양이가 귀엽다.

 

컴공 졸업프로젝트 졸업 전시회 졸업 논문이랑 국문과 졸업 논문 등등 졸업에 필요한 절차는 7학기에 다 끝내놔서 졸업장에 전공 3개를 무사히 달고 졸업했고 졸업한 나를 기다리는 건 앱 출시 작업을 하느라 엄청나게 바쁜 일들

 

그냥 CS 공부하는 겸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따고 싶어서 공부도 했는데 실기 2일의 기적 성공했다. 퇴근 후에 공부하는 거라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들일 수 없어서 정말 집중했다. 필기 공부할 때 다 공부해놓기도 했고 이전에 CS 공부 열심히 했기도 해서 노베이스는 아니었다. 애초에 전공 수업으로 들어서 아는 내용이 있었기도 하고. 학부생때 CS 스터디 진행했던 레포는 이거이다. 리드미 정리해야지…

 

23년 정기기사 3회 시험이었고 실기 합격률을 찾아보니 17.7%이다. 시험이 코드 위주라 조금 어렵긴 했다. 필기 합격한 사람이 실기 보는 거라 어느정도 시험 보는 사람이 걸러진 상태일 텐데 20% 못 넘는 난이도의 시험… 예전에 쉬웠다던 정처기 어디감

 

 

미국에 공부하러 가요

학교에서 일리노이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학생 신분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거라 한참 고민하다가 회사에 미국 시간이 한국이랑 반대니까 미국 시간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 시간은 한국 낮 시간이니 그때 원격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맘 편히 갔다오라고 무급 휴가 처리 해주셔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가기 전에 일 다 끝내고 가려고 내내 야근을 했고 QA 팀한테 내가 맡은 파트 먼저 QA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고 부탁드려서 QA 올라오는 거 다 쳐내고 갔다. 그런데 출국 전 공항에 있을 때 올라온 걸 봐서 너무 신경쓰여서 인천 공항에서 공항 와이파이 연결하고 디버깅하다가 비행기를 탔다. 미국 첫날에도 밤에 다른 QA 항목 대응하고…

 

미국 대학교다보니 당연히 영어로 수업을 듣는데 내가 교사로 영어 수업을 진행한 적은 많아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수업을 위한 스터디가 필요했는데 학술부장으로서 해당 스터디도 진행했다. 원래 영어 스피킹은 국제한국어교육을 전공하기도 했고 한국어교육봉사단에서 1년 반동안 외국인들한테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어서 거부감이 없었는데 역시 학술적 내용이 들어가니 쉽지 않았다.

 

아무튼 미국 대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회사로 복귀해서 일을 잘 처리했다!

 

 

운동 짱이 될 거야

입사 후 이제 돈을 벌게 됐으니 운동을 슬슬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슬슬 운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헬스를 하고 싶은데 헬스를 해본 적 없는 종이 인간이라 헬스부터 시작하기보다는 필라테스랑 병행하고 싶어서 헬스와 필라테스를 섞어서 하는 곳에 피티를 등록했다.

 

업셀링에 당할지 말지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3개월만 하자!며 피티 20회를 결제했고 그 이후 연말 할인 이벤트에 현혹되어 16회를 추가 결제했다 ^-^ 사실 맘에 들어서 더 할까 고민하던 중에 할인 이벤트가 나오니 바로 현혹될 수밖에…

 

피티는 일주일에 2번을 했고, 피티가 없는 날에는 개인 운동을 나갔다. 회사가 9~1시 자율 출근이라 피티를 아침 9시에 하고 씻고 바로 출근했다. 개인 운동은 보통 아침 10시에 갔다. 주5회 아침 운동을 하던 굉장한 시기이다. 매일 식단도 찍어 보냈는데 샐러드 먹을 때 고기 육회 연어 이런 단백질 넣으면 칭찬 받고 운동하고 1시간 이내에 꼭 빵이랑 프로틴 드링크 먹으라고 당부받고 덕분에 먹는 양이 조금은 늘었다. 증량을 목표로 열심히 했고 피티 끝날 때쯤 복근이 눈에 보였다. 종이 인간 감격…

 

4월 20일에 마지막 피티를 했고 3킬로 증량했다. 증량하려고 억지로 먹어도 그대로거나 더 빠져서 스트레스였는데 운동하니까 오히려 늘어서 좋았다. 내 작고 소중한 골격근량

 

필라테스를 하니까 자세 교정도 되어서 오래 앉아있으면 생기는 허리 통증이 줄어들었다. 처음 체형 진단 받을 때 ‘개발자치고는 덜 거북목이시네요’라는 평을 들었는데 이제는 ‘개발자인데 거북목이 아니네요’가 되었다. 일하다가 모니터로 빨려 들어가는 동료 개발자한테 종종 거북목 조심하라고 말한다. 건강 관리는 미리미리…

 

피티가 끝나고 나서는 킥복싱을 등록했다. 복싱은 19년도에 시작해서 방학 중에만 갔었고, 실제 운동한 기간으로 따지면 1~2년 정도 한 것 같다. 스트레이트를 세게 날리면 다음날 손목에 무리가 오는 종이 몸에게는 복싱이 잘 맞는 운동은 아니었지만 복싱으로 옮긴 이유는 피티라는 강제성이 사라진 이상 재밌어야 내가 운동을 나갈 것 같아서이다. 복싱도 그냥 복싱 말고 크로스핏이랑 킥복싱을 같이 하는 곳으로 등록했다. 여기는 11시부터 열어서 11시에 운동하고 출근하거나 퇴근하고 와서 운동을 했다. 헬스는 끝나면 땀이 맺혀 있다면 복싱은 땀이 줄줄 흐르다 못해 다리가 후들거리기 때문에 내 체력이 느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인데 크로스핏하면서 생긴 손바닥 굳은살이 지금도 있다. 영광의 상처로 보겠어… 내년에 운동을 하게 된다면 아마 복싱이나 헬스 중에 하지 않을까 싶다.

 

유럽 퇴사 여행

어른들의 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전에는 해외 여행 대신 방탈출을 했다면 퇴사 후에는 방탈출 대신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생은 돈이 없고 시간이 많다면 직장인은 돈이 있고 시간이 없기에 돈과 시간이 생긴 지금 갔다오지 않으면 앞으로 가지 못할 거라는 판단을 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유럽 여행을 가보고 싶기도 했고. 여행을 위해 퇴사를 한 게 아니라 퇴사를 해서 여행을 갔다.

 

갔다와서는 공부를 하고 있다. 회사 다니면서 이론적 공부는 덜했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에는 개인 공부를 더 해야겠다.

 

 

학교 다니기 전과 후 시간표인데 돌아보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 

23년은 회사와 함께 큰 성장을 이룬 해였다. 좋은 개발 환경을 가진 회사에 들어가서 많이 성장했던 것 같고,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놓친 학교 생활이 아쉽기도 하고 회사 경험을 일찍 쌓아서 좋기도 했다. 아직 어리니까 불안해 하지 말고, 그렇다고 안주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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